팔베개 엄마 되어

풍산개

은별(한명라) 2001. 6. 23. 10:56

 

 

앞의 칼럼 6호 "둘째 오빠와 호떡 장사 친구"에서
아직까지 풍산개로 우정을 이어 오고 있는 둘째오빠 이야기를 썼었습니다.

처음엔 승완이가 "풍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막상 그 개를 대하고 보니, 눈처럼 하얀 털을 가지고 있어서
"백구"라고 개명(?)을 했더랬습니다.

시댁에 백구를 가져다 준 지 5일이 지난 후,
안부전화를 하는 제게 시아버님께서 그러십니다.
"며느라~ 개가 사람을 보고 짓지도 않고...
오는 사람마다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고,
저러다간 아무나 따라갈 것 같아서 불안하다...
너그 친정오빠한테는 잘 크고 있다고 하고,
그냥 팔아서 승완이 통장에 저축이나 해 주면 안되겠나?"
그러십니다.

백구를 가져오기 전에 둘째오빠는 여러번 내게 전화를 걸어서 풍산개의 특징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원래 백두산 근처의 사냥꾼들이 기르는 풍산개는
사냥꾼들이 사냥에 나설 때,
다른 사람의 풍산개를 빌려 와서 사냥에 나선다구요.
그럼 그 빌려온 풍산개는
다른 환경의 풍산개와 사냥꾼에게도 적응을 잘 해서
사람에게는 절대 복종을 하고,
다른 풍산개와도 어울려 합동으로 사냥을 한답니다.

그런 특성 때문인지,
우리집 백구도 사람을 무지 좋아 했습니다.
절대 짓는 모습을 보질 못했으니까요.....

아마 이곳의 시골 사람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풍산개가 아주 대단한 줄 알았는데,
짓지도 않는 그런 백구가 어찌 보면 바보 같아 보이고,
제대로 된 개 같지 않아 보일 수도 있었겠지요...

둘째오빠는 또 그러셨습니다.
사람을 보고 짓는 개는 상대방이 두려워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경고하는 의미로 짓지만,
풍산개는 워낙 무서운게 없고 자신감이 많기 때문에
짓지 않는다고요.
다만, 자신에게 버릇없는 동물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무섭지만,
사람에게나 아주 어린 아이에게도 절대 복종을 한답니다.

암튼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항상 동생들이나 형제간에게 관심이 많은 둘째 오빠.
틀림없이 수시로 전화를 해서 백구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을 해 올텐데...
오빠가 우리 시댁에 확인차 오실 수 없다고 해서
있지도 않는 백구가 잘 크고 있다고 거짓말은 할 수가 없고...

정말 택배로 배달만 가능하다면,
백구가 있던 친정으로 다시 돌려 보내고 싶었습니다.

망설이던 끝에 둘째오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마 시숙이 곧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댁 어른들이 백구를 신경써서 잘 거둘 수가 없을 것 같다고요...
백구가 아무나 좋아해서
사돈이 선물로 준 풍산개 행여 잊어버릴까 걱정이 많다고요...
다시 친정으로 보내야 하는지, 아님 팔아야 겠는지
오빠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요...

오빠는 백구를 팔지 말라고 그러십니다.
팔아버리면 백구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그냥 끝나는게 아니냐구요,
혹시 울남편의 친구나 잘 아는 사람에게 백구를 키우라 하고,
나중에 백구의 후손으로 한마리 달라고 그러십니다.

결국 남편 회사의 총각 직원이 시댁으로 백구를 가질러 갔습니다.
우리가 백구를 가져다 드린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 진가를 알고 귀한 대접을 받는 풍산개가
어쩌다 우리집에서는 찬밥 신세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일단 남편의 공장 옥상에서 이틀을 보낸 백구.
남편이 잠시 짬을 내어 올라 가서 보니,
사람 구경도 할 수 없는 옥상에서 하루 종일 혼자 보내야 하는 백구가 너무 안되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시댁에서 백구를 가져 온 총각 직원의 집으로 보냈답니다.

가끔 나는 백구의 소식을 남편에게 물어 봅니다.
백구가 잘 크고 있는지...

여전히 넉살 좋게 사람을 잘 따르고,
밥도 많이 먹고 무럭 무럭 잘 큰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승완이에게서 일어났습니다.
백구가 보고 싶어서
현충일에도, 토요일에도,
그리고 일요일에도 시골에 가자고 노래를 불러 대더니
백구가 시골에 없다고 했더니 이제는 절대로 안간답니다.

시숙의 수술로 시어머니께서 큰집 아이들 학교 때문에 큰집에 가 계시고,
혼자 시댁에 계시는 시아버님 밑반찬이나 해 드릴려고
지난 일요일 시댁엘 가려고 하는데,
승완이는 자꾸만 안간다고 엉덩이를 뺍니다.

"잉~ 백구도 없고, 나 안갈래~~"
"앙가~ 앙가~~"

할아버지께서 승완이를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승완이가 안가면 서운해 하신다고,
아마 우실지도 모른다고,
얼르고 달래서 겨우 겨우 차에 태우고 시댁엘 갔습니다.

반갑에 맞아 주시는 할아버지께 승완이는 또,

"백구도 없고~~ 힝~~"

그날 할아버지는 승완이의 마음을 달래 주느라,
논으로 밭으로 손 잡고 다니시면서
개구리도 잡고,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느라고,

온 몸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긴,
어른인 저도 가끔 천진스런 백구의 눈빛이 생각이 나는데,
나중에 언젠가는 마당이 넓은 집에서
진돗개나 풍산개를 기르며 살고 싶다는 승완이는
얼마나 백구가 보고 싶을까요?

그 마음을 할머니나 할어버지께서는 아셨더라면
백구를 그렇게 키우시지 못하겠다고,
쉽게 팔자고 하시지 않았을 텐데...

언젠가 한번쯤은 승완이 데리고 백구를 보러 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총각 직원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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