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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25층 흔들 "엄마,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은별(한명라)
2005. 3. 2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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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오늘(20일) 아침 일찍, 전기압력솥에 쌀을 씻어 앉혀 놓고
아들아이에게 "1시간쯤 후에 전기코드를 꽂고 취사 버튼을 눌러 달라"고 부탁을 한 후, 저는 우리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있는 대중목욕탕에
다녀왔습니다.
목욕탕에 다녀와서 어제 시장에서 사 온 미나리를 데쳐내고 새콤달콤하게 무쳐서는 은빈이, 승완이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순간에 우리 집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현상이 느껴졌습니다.
식탁 바로 위에 있는 전등갓이 출렁 출렁
그네를 타고, 싱크대 속 함지박에 하나 가득 담겨 있던 물이 철퍽 철퍽 넘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25층 고층아파트 중에서 제일 꼭대기인 25층에
살고 있던 우리 집은 그 흔들리는 강도가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심했습니다.
순간, "엄마!!! 우리 집이 왜 이러는
거예요?"하고 묻던 중학교 2학년인 은빈이와 1학년인 승완이가 거실로 달려가더니 거실바닥에 철퍼덕 엎드리면서 "엄마! 엄마도 빨리 이리 오세요!
전등이 엄마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하고 소리를 쳐 댔고, 은빈이는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더 살고 싶어요!"하며 소란을
떨었습니다.
이게 단순히 우리 집에서만 생긴 현상인지, 아니면 지진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집들의 공통된 현상인지 알고 싶어서 뒷
베란다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도로를 걷는 사람들이나 주변의 풍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롭기만 했습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서 식탁 위로 길게 줄을 드리운 전등을 쳐다보니 전등갓은 아직도 흔들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나오면서 안방
침대도 흔들리더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잠잠해지고, 끝내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나서 설거지를 하던 중에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저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은빈이와
승완이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는 "엄마, 왜요?" 하고 묻습니다.
"있잖아~ 아까 지진으로 우리 집이 심하게 흔들릴 때 말이야~
너희들이 살겠다고 거실바닥에 꼭 개구리처럼 철퍼덕 엎드린 모습을 생각하니까 자꾸 웃음이 나지 뭐니~~"
순간 은빈이는 쑥스러운 듯
"에이~ 엄마는~~"하고 멋쩍은 웃음 짓습니다.
창원의 대단위 아파트단지 내 25층 최고층에 살면서 이제까지는 햇볕도 잘 들어오고,
전망도 좋고, 위층으로부터 전해오는 소음도 없어서 좋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무척 만족을 하고 살았었는데, 오늘 아침
지진소동을 겪고 나니 정말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또 오늘보다 강도가 몇 배나 강한 지진이 예고도 없이 닥쳐온다면 순식간에
대피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행여 25층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우리 가족들은 아예 뼈도 못 추릴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기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자연으로부터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지진이나, 또 지난번 동남아시아를 덮쳤던 쓰나미 같은 거대한 해일 앞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 엄청난 재앙을 모두 받아야 하는 우리 인간들은 아주 작은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달았던
일요일 오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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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블러그 "낮은
울타리의 마당 넓은 집"에도 실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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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0 오후
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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