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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까닭은...
은별(한명라)
2005. 3.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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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연년생으로 두 아이가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
은빈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아이 승완이.
저는 지금도 변함없이 아침이면 아이들이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25층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아침 8시쯤이면 은빈이가 먼저 "다녀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면 저는 시간이 잠시
흐른 후에 앞 베란다 문을 열고 학교를 향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은빈이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어느 결에 승완이도 제
곁에 서서 "엄마~ 누나 학교에 가는 거 보시는 거예요?" 하고는 밖을 내다 봅니다.
떨어지면 위험하다고 아들아이를 조심시키면서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친구들과 조잘대며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서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은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은빈이가 오늘도 건강하고,
아무런 탈없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빌어 봅니다.
그리고 잠시후, 승완이도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현관을 나섭니다.
은빈이 누나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둘이서 나란히 어깨를 함께 하고 걷던 그 길을 이제는 승완이
혼자서 걸어갑니다.
승완이는 엄마가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장소에 서서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 25층의 뒷베란다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한 손을 아주 크게 흔들어 보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가끔,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에게 가벼운 꾸지람을 들었거나, 호된
질책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제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서면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않을 그 자리에 서서 크게 손을 한번 흔들어 주기만 하면, 조금전에
있었던 서운했던 일도, 그리고 마음 상했던 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된다는 것을 엄마와 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다 가끔은
엄마가 베란다를 찾았을 때에 이미 아들의 뒷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때도 있고, 엄마가 한참을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어도 아들이 깜빡
잊어버리고 엄마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스치는 아주 작은 서운함을 엄마는 알고 있기에, 행여
아들아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당연히 엄마가 서 있다고 믿고 있던 그 자리에 아무도 없음을 발견하고 서운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는
될 수 있으면 그 자리에 서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훗날, 언제인가 아주 먼 훗날에라도 이 엄마가 돌아 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떠난 후 아이들과 힘든 일을 함께 할 수 없을 때, 아이들이 살아가는 일이 힘에 겨워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그냥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고 싶을 때에 오래도록 자신의 뒷모습을 든든하게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면, 비록 힘들어도, 그냥
주저앉고 싶어도, 한번쯤 더 용기를 내어 보고 싶어지고 한번쯤 더 힘을 내어 우뚝 일어서고 싶지 않을까요?
제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서 지금까지 창가를 서성이면서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이들이 아주 힘들고 어려울 때, 그런 작은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엄마의 모습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은 까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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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2 오전
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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