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옛날의 금잔디
김장을 준비하다가...
은별(한명라)
2003. 12. 13. 02:26
이번 일요일,
시댁에서 가져 온 배추와 알타리 무우로 김장을 담구기 위해서
어제부터 4등분한 배추에 소금을 켜켜히 뿌리기도하고,
적지않은 양의 마늘을 까기도 하다보니
저의 어린시절에 친정엄마께서 김장을 담구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시던 모습이 자꾸만 떠 오릅니다.
두툼한 겨울 몸빼바지를 입으셨고,
긴 목도리로 목과 머리까지 푹 싼 모습으로
그 시절 유난히도 추웠을 12월의 시작을 김장을 담구기 위해서
종종 걸음을 치셨습니다.
가을 내내 작은 봇도랑 건너의
커다란 뽕나무가 봇도랑을 따라 죽 서 있는,
꼭 손바닥만큼 작은 밭에 무우와 배추농사를 지으셨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리어카에 배추와 무우를 뽑아다 싣고는 했습니다.
그때의 유난히 굵은 배추뿌리는 우리들의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들큰한 맛과 알싸한 맛이 함께 느껴졌던 배추뿌리를 깎아서
우적 우적 먹기도 하면서 밭에서 무우와 배추를 수확하는 즐거움이란...
지금의 무우보다 훨씬 미끈하고 하얗던 그 시절의 무우.
무우잎이 달린 윗부분이 연두색이 유난히 많은 무우는
그 단맛이 훨씬 깊어서 흙이 묻은 칼로 쓱쓱 깎아 먹는 재미도 있었지요.
마당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펌프가에
소금을 뿌려 숨을 죽인 배추를 커다란 소쿠리와 채반과 함께 리어카에 싣고서
봇도랑으로 배추를 씻으러 가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되겠지만,
그 시절의 시냇물은 오염이 안된,참으로 깨끗한 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봇도랑으로 배추를 씻으러 가면
앞서서 배추를 씻으러 온 사람들의 리어카와
뒤이어 배추를 씻으러 온 사람들의 리어카 여러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봇도랑가에 줄지어 서 있었지요.
그렇게 리어카들이 오손 도손 다정한 대화를 나누듯 서 있던
그 시절 김장철의 고향의 봇도랑 풍경.
그렇게 깨끗하게 씻은 배추들의 물기를 빼는 동안
엄마는 이웃의 아줌마들과 품앗이 하듯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여러가지 양념들을 준비하시고,
함께 김장을 담구셨습니다.
갓과 꽃모양으로 썰은 예쁜 당근, 무우채, 굴, 밤, 잔파, 갓 볶은 깨소금...
그것들이 한데 섞여 절묘한 맛을 선보이는 신기로움.
어리기만 했던 동생과 저는
싱싱한 배추에 양념속을 넣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연신 맵다고 입을 호호거리면서도
"나 한입만, 나 한입만..."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담근 김장김치를 그릇에 담아
앞집, 옆집, 뒷집에 신명나게 가져다 주던 일도 동생과 제가 해야 했던,
참으로 신바람나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서쪽으로 난 부엌문 앞,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 주~욱 파 묻어 둔 김치독에
앞으로 한참 후에나 먹을 짠 김치가 담긴 김치독,
이제 바로 꺼내 먹어야 할 김치독,
그리고 무우와 풋고추, 배와 사과가 둥둥 떠 있는 동치미가 담긴 김치독,
총각김치가 가득 담겨 있는 김치독.
어쩌면 김장을 끝내고 나서
그 김치독들을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았을 울 엄마의 기분이
지금에서야 세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번에 시댁에서 가져 온 30여 포기가 넘는 배추는
손주들과 자식들이 먹을 배추라고 약도 치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벌레를 잡아가면서 키웠다는 크고 작은 배추.
그래서 시장에서 파는 배추보다는 더욱 벌레가 먹은 부분도 많아서
상품가치로서는 별로인,
그 크기도 크고 작기가 유난히 차이가 많이 나는 배추이지만,
어린시절의 기억을 애써 떠 올리며
울 친정엄마의 솜씨를 흉내내면서 맛나게 담구어야 할 텐데...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이 글 하나 띄워 놓고,
마산 바닷가에 자리잡은 오동동 어시장에 시장보러 가야겠습니다.
싱싱한 굴이랑, 새우랑 사러요.
김장김치 맛있게 담구어서 우리 마당 넓은 식구들이랑
오손 도손 마주앉아 맛나게 나누어 먹자구요~~~
그러면 아마 어느 분께서
맛있는 고구마를 커다란 양푼에 하나 가득 삶아 가지고서
우리 마당 넓은 집의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 오시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