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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80평생 자식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은별(한명라) 2005. 3. 28. 18:31
"엄마는 80평생 자식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먼 길 떠나는 차를 향해 기도하시는 엄마
  한명라(hmr3341) 기자
이번 추석 연휴에 저는 친정에 가지 못했습니다. 추석이 지난 며칠 후인 토요일 오후에 나는 바쁜 남편을 남겨두고, 두 아이들만 데리고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토요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 아파트 주차장을 출발하여, 전북 장수군 산서면에 위치한 친정집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주변이 어두워진 7시 30분쯤이었습니다.

친정 앞마당에는 두 마리의 개들이 요란스럽게 짖어대고 있습니다. 개 짖는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나오시는 친정엄마는 다리가 많이 아프신지 나무지팡이를 짚고 계셨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엄마의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제 마음 한켠이 시려옵니다.

엄마는 저와 두 아이들만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그 먼 길을, 그것도 꾸불꾸불 험난하기로 유명한 장수 팔공산의 비행기재를 뚫고 무사히 운전해 온 딸이 무척 자랑스러운 듯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저희들이 도착하면 바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저녁 준비도 해 오셨습니다. 또한 험난한 산길을 지나 올 때를 생각하시며 마음 졸이며 우리를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먼 길을 달려 온 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따뜻한 불빛처럼 엄마의 마음도, 사랑도 아늑하고 따뜻하기만 합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 아직 새벽닭도 울지 않은 이른 시간에 엄마는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란히 서 있는 촛불 두 개로 방안을 밝혀 놓고,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몸단장과 깨끗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십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열 두 자식들, 며느리들, 사위들 그리고 29명의 손주, 손녀들을 위한 결코 짧지 않은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매일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계십니다.

그날 나는 친정의 우물가에서, 고추밭에서, 혹은 텃밭에서 엄마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들빼기도 캐고, 아직 여린 풋고추도 땄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썩어가는 감자만 골라 먹으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알이 굵고 단단한 감자를 챙겨 주십니다.

안방 한 켠에는 엄마가 펴 놓은 상이 있습니다. 당신이 한가할 때 읽으신다는 책들이 쌓여 있고, 이미 날짜가 지나 뜯긴 달력들도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아마 엄마가 한문공부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습종이인 듯합니다

그동안 한문공부를 했던 연습종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모두 불쏘시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한문공부를 하던, 아직 빈 여백이 반이나 남아 있는 연습종이 한 장을 가방에 챙겨 넣었습니다. 엄마의 흔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입니다.

상 위에는 눈에 띄는 책이 있습니다. 원택 스님이 썼다는 <성철스님의 시봉이야기>라는 책 1권, 2권이 나란히 놓여져 있습니다. 막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다는 두 권의 책 중에서 엄마는 벌써 1권을 여러 차례 읽으시고, 이제 2권을 읽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그 중 이미 읽은 1권을 외손녀인 은빈이에게 가져가서 읽으라고 선물로 주십니다.

올해 연세가 84세인 외할머니가 14살인 외손녀에게 주는 책 선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은빈이는 외할머니께서 주시는 책을 "감사합니다"라고 냉큼 받아 챙깁니다.

그런 중에서 엄마는 노랗게 물이 들어가는 깻잎을 따러 나가십니다. 엄마는 "너는 바쁘게 사니라고 시간이 없으니까"라고 하시면서 깻잎 김치를 담아주셨습니다.

친정에서 머무는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는지요? 점심식사도 서둘러 마치고, 엄마께서 챙겨 주시는 보따리들도 차의 트렁크에 빠짐없이 싣고서 떠날 차비를 마칩니다.

요즘 들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엄마는 어쩌면 보청기를 착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데….

운전석에 올라앉은 저는 다음에도 이렇게 ‘휭~’하니 친정으로 달려와서 지금처럼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서글픈 의문이 남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애써 떨쳐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나는 유난히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엄마에게 인사를 남깁니다.

"엄마! 다음에 또 올께요. 몸 건강하시고, 조심하세요."
"그려, 조심해서 천천히 잘 가거라이."

그때 엄마 곁에 서 계시는 아버지에게 농담 섞인 인사말을 남깁니다.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엄마랑 싸우지 마시고 사이좋게 잘 지내세요."
"아! 내가 싸우긴 뭘 싸운다고 그러냐, 조심해서 가거라."

마당에 세워 놓았던 차를 대문 앞에 잠시 세워 놓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엄마에게 인사를 합니다. 액셀러레이터에서 서서히 발을 떼어 놓은 순간, 엄마는 저의 차를 향하여 공손히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숙여 절을 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 차례 반복하여 기도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돕니다.

어쩌면 엄마는 딸이 운전하여 떠나가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모퉁이를 돌아서 당신의 눈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도 그렇게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게 숙이면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먼 길을 떠나는 딸이 무사하게 잘 돌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엄마께서 당신의 열 두 자식을 위해서 80평생을 기도 속에서 살아 오셨음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Daum) 칼럼 "낮은 울타리의 마당 넓은 집"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2004/10/13 오전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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