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여러번 할게 못되는 것이 이사인 것 같습니다.
여러군데의 포장 이삿짐 센터에 전화를 해 보았지만
모든 곳이 이미 예약이 다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예약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누구겠습니까?
여러군데의 이삿짐센터에 알아 본 결과,
딱 한군데 이삿짐센터에서만이 2월 28일 오후에 포장을 하여 5톤 트럭에 모든 짐들을 실어 놓고서
3월 1일 아침 일찍 짐을 들이고, 모든 정리가 오전 12시 이전에 끝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싶어서
남편과의 상의 끝에
그렇게라도 이사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월 28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5명의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저희집으로
거침없이 들이 닥쳤습니다.
많은 박스와 바구니들을 대동하고서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로 올라서는 폼들이
어찌나 위풍당당 하던지...
그렇게 시작된 이삿짐 포장은 오후 7시에 김치냉장고만 남겨 놓고
5톤 트럭과 그보다 조금 작은 트럭에 완벽하게 실렸습니다.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흔적처럼 엉망인 집을
구석 구석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았습니다.
아무리 새롭게 도배, 장판을 한다고 해도
정신없이 어질러진 집을 보게 되면
저희 집을 구입한 사람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나서 보니 저녁식사와 당장 하룻밤을 자야하는 문제가
우리 가족들 눈앞에 긴급한 문제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키우시던 모든 소들을 팔아 버리신 시아버님께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하시기 위해서 오신 까닭에
남편은 줄곳 시어머님과 시아버님 곁에 머물러야 했고,
결국 저 혼자서 5명의 직원들과 이삿짐을 싸기도 하고
만두까지 배달시켜 주면서
다음날 부디 아무런 차질없이 이사를 하게 도와 달라고 단단히 부탁도 했습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떠나 보내고 나서
승완이, 은빈이와 함께 근처의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나서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하룻밤의 잠을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이 이사를 들어가야 하는 아파트 근처의 찜질방으로 향했습니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찜질방을
결국 이런 기회를 빌어서야 처음으로 가 보았는데...
이궁~~ 글쎄요.
결코 그 잠자리가 편치 못했습니다.
허리, 다리, 성한데가 없이 온몸이 욱씬거리고
뒤숭숭한 꿈자리에 시달리고 있는 그 순간에
저의 휴대폰이 부르르르... 진동으로 울립니다.
세상에... 아침 7시인 그 시간에
벌써 이삿짐센타의 직원들이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혼자서만 부시시한 머리에 대충 물만 찍어 바르고는
퉁퉁 부은 얼굴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탔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지
길바닥은 온통 빗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고,
작은 트럭에 실려 있던 은빈이의 침대 매트리스와 장롱도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저의 속이 무척 쓰리고 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시간부터 시작된 이삿짐 정리가 오후 6시에서야 대충 마무리가 되었고
그제서야 가까운 백화점의 슈퍼에서 재빠르게 시장을 보아서는 저녁식사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새로운 우리집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시어머니께서
잠시 외출을 허락 받아서 저희집에 시아버님과 함께 오셨고,
부산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큰고모 가족과
저와 같은 창원에 살고 있는 작은 고모 가족,
그리고 시숙네 가족들 모두가 저희 집에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실은 남편과 저의 계획대로라면
시어머님을 잠시라도 퇴원을 하시게 하여서
단 며칠이라도 시아버님과 함께 저희집에서 모시고 싶었는데,
새벽녘에도 몇번씩 주사와 영양제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퇴원이 곤란하다는 담당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일단 퇴원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얼렁뚱당 가족들간의 집들이가 끝이나고,
밤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시댁 식구들은 시어머님, 시아버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돌아갔습니다.
언제나 과묵하신 까닭에 당신의 속내를 잘 내보이시지 않는 시아버님께서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이셨다는 이야기에,
이미 염색을 해야 할 시기를 한참이나 지난 탓인지
머리속이 온통 하얗기만 한 시아버님의 뒷모습에,
저는 마음이 자꾸만 저려 옵니다.
좀 더 큰 종합병원으로 모시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그냥 큰아들 집에서도, 작은 아들 집에서도
가까운 위치에 있는 지금의 병원에 계시겠다는 시어머니는
저희 자식들 그 누구도 당신의 병명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드린 적이 없지만,
그 어떤 병원에 입원한다 하더라도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저희들의 마음을 은근히 떠보기까지 하십니다.
이미 40년도 훨씬전인,
아마도 50년이 가까운 시절에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다는 시어머님 당신의 큰 아들이
자꾸만 꿈에 보인다고,
당신 살아 생전에 그 자식이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빌어주고 싶다면서
천도제를 지내주고 싶다는 바램에
저희 자식들은 시어머님의 그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 천도제에 시어머님도 꼭 참석하시고 싶어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시는 건강 때문에
두 며느리와 작은 고모만이 참석할 것 같습니다.
시아버님,
그리고 두분의 손위 시누이들과 두분의 아주버님들,
또 시숙님과 형님,
남편과 저는
시어머님의 그 아픔과 고통을 결코 함께 나눌 수는 없는 처지이기에,
옆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하는 까닭에,
시어머님 당신 혼자서 감당해야만 하는 아픔이기에,
앞으로도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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