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째언니네와의 헤어짐을 위한
안면도에서 보냈던 1박 2일 동안의 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오후 3시 25분 새마을호를 타야하는 저 때문에
뻥순이네 가족만이 일요일 오전 11시에 저와 승완이, 은빈이를 태우고
아쉽게도 다른 가족들보다 빨리 안면도를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하필이면 16일 오전에 놓쳐서는 안되는 시험을 치룬다는 세째오빠와
온몸이 녹초가 될 만큼 밀린 일 때문에
토요일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아쉬움의 전화를 걸어 준 다섯째언니가 참석하지 못하여
12남매 모두가 아닌,
10남매가 모여서 좋은 시간을 보내었음에도,
시인이신 큰오빠를 통해서 어느 여류소설가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안부인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웬지 제 마음과는 달리 안면도에서의 시간들을 쉽게 정리할 수 없었고
그날의 만남을 궁금해 하시는 마당 넓은 집의 가족들께도
그 이야기들을 들려 드릴 수 없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시어머님이 계신 탓에
우리 남매들의 모임에 참석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당연히 참석을 해야 한다고,
당신 아들이 함께 가지 못하고 며느리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 일에
오히려 미안하게 생각하시던 시부모님.
안면도에 다녀와서
월요일날 뵌 시어머님의 건강은 제가 떠날 때 보다 훨씬 좋아지신듯 보여서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제인 수요일 오후 2시쯤,
시아버님과 제가 시어머님의 병실을 지키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시면서 식은 땀을 흘리시던 시어머님께서
구토와 함께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습니다.
시어머님을 부축하시는 시아버님을 뒤로 하고서
정신없이 간호사실로 달려간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많은 간호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응급조치를 취한 탓에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심근경색...
말로만 들었던 그 병명의 현상을 제가 직접 두눈으로 목격을 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두눈이 풀리면서 앉아 계시던 모습에서 힘없이 앞으로 몸을 구부리시던 모습이며,
그 다급했던 상황들이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 저의 머리속에 또렷하게 떠 오릅니다.
시어머님께 산소호흡기를 꽂고,
잡히지 않는 맥박을 체크하면서
자꾸만 낮아지는 혈압을 올리기 위해서 여러명의 간호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그 순간들,
시아버님과 저는 그렇게 위태로웠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고,
빨리 병실로 와 달라는 저의 전화를 받고 달려 온 차분하고 냉정한 남편과 함께 있어서
그렇게 위태롭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같습니다.
어쩌면 2녀 2남 자식들 다 남겨 두고,
시아버님과 저만이 시어머님의 운명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놀라움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담당의사선생님께서 중환자실로 시어머님을 옮기도록 조치를 취한 후
우리 가족들에게 들려 주신 이야기는
급작스런 심근경색으로 한쪽 심장이 마비가 되어 있어서 혈압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응급조치를 적절하게 잘 해준 까닭에
뇌손상과 한쪽 몸이 마비되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하루에 네번,
그것도 15분 동안에 2명씩 밖에 허용되지 않는 면회시간에 맞추도록
남편은 두 시누이들에게 서둘러서 전화를 했고,
다음에 있을 면회시간과 시누이들을 기다리면서
시아버님과 시숙님과 형님, 그리고 남편과 저는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에 들러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시어머님께서 입으실 수의와 관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애써 무심한 척,
모르는 척,
그 누구도 서로가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던
앞으로 어느 순간에 닥쳐올지 모르는 시어머님의 장례식을
이제는 조금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준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지만
시어머님께서 운명하실 순간이 되면 산소호흡기를 매단 채라도
시골의 시댁으로 시어머님을 데리고 가겠다는 시아버님의 말씀에는
두 아들, 두 며느리 모두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듣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살아오신,
고생만 하고 살아오신 당신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시아버님께
어느 누가 무어라 할 수 있었겠는지요.
2녀 2남 당신 자식들과 두 며느리, 그리고 큰사위와 함께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지는 않고 조금씩 호전되어 가고 있는 시어머님을
저녁 8시에 있는 마지막 면회를 하고 나서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데도 쉽게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고
병원의 로비에 모두 앉아서
어쩌면 앞으로 닥쳐 올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첫번째 면회시간과 담당 의사 선생님의 회진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나간 남편은
시어머님의 건강상태가
어제보다 더 나빠지진 않았어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 또한 두번째 면회시간에 맞추어서 시어머님께서 입원하고 계신 병원에
나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남겨질 사람들은
한없는 슬픔에 잠겨 있을 틈도 없이,
어쩌면 냉정하다 싶을 만큼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가 봅니다.
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뤄야 하는지,
아니면 당신 평생을 살아오신 시골 집에서 장례식을 치뤄야 하는지 까지도요.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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