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오늘 너희 학교가 있는 담양에 눈이 내렸다는
너의 들뜬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
며칠전 너와 전화로 주고 받았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써 본다.
10월 세번째 주,
그날도 엄마는 평소처럼 너의 안부가 궁금해서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갔단다.
3학년 학급일기에 언제나처럼 학생들 주말계획을 올려 놓은 담임선생님 글에
가물치, 호박이라는 예전과는 다른 단어들이 덧붙여 있기에
너희 평화반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했었지.
그리고 며칠 후 밝은 목소리의 너와 통화를 하다가
그날의 담임선생님 글이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지.
그때 너는 약간은 흥분된 목소리로
담임선생님 사모님께서 딸을 출산하셔서
너희들이 약간 돈을 모아 선생님께 선물을 했다고 했지.
그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는 내게
"가물치 한 마리와 호박, 그리고 금줄도 쳐 드렸어요~" 하고 대답을 했었어.
그래 아기를 출산한 사모님 갖다 드리라고
학생들이 선생님께 가물치와 호박을 선물한 내용도 파격이었지만,
금줄을 쳤다는 말에
설마 선생님댁 찾아가서 현관문 앞에 금줄을 쳤다는 말인가 생각했지.
"금줄은 어디에다 쳤는데?" 하고 물었더니,
"교실에다 쳤지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너의 말에
엄마는 박장대소를 했구나.
그 선물을 받으신 담임선생님 반응을 물었지.
'무척 행복해 하셨다'는 너의 말을 들으면서
너희들 선물을 선생님 삶에서 최고의 선물이라고 썼던
그날의 학급일기가 다시금 떠 오르더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20여일 앞둔 고3학생들의 기발한 선물과
그 선물을 당신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고마워하시는 선생님이라….
그 일을 떠올리다 보면
지금도 엄마는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번지는구나.
2006년 11월,
담양에 있는 대안학교인 한빛고등학교에 합격한 너를 두고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아빠와 네 뜻대로 보내고 싶어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썼던 적이 있었지.
그때 많은 사람들이 너의 의견을 존중해서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하게 해야 한다는 댓글과 메일을 보내 주었지.
그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아빠도 기분좋게 한빛고등학교 입학을 허락했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네가 고3학년이라니...
지난 2008년 3월이 생각나는구나.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했던 2007년 한해를 보내고,
2학년이 되면서부터 너는 자꾸만 자퇴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지.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치른 후 수능을 보겠다는 너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했었단다.
서울의 고등학생들은
보충수업이다, 야간 자율학습이다, 학원이다, 개인과외를 하느라고 정신없는데
특성화 자율학교라는 이름의 한빛고등학교를 계속 다니다가
어쩌면 네가 원하는 대학교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너는 자퇴하고 싶다고 했었지.
그때 엄마 아빠는 자퇴는 허락할 수 없고,
차라리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라고 했었지.
그래서 서울의 여느 학생들과 어울려 제대로 경쟁을 해 보라고.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에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에,
너는 그냥 한빛고등학교에 머물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었지.
고3이 된 네가 지난 여름방학동안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난생 처음으로 수학과외를 1개월 받기도 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마음 한구석에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단다.
혹시 네가 대학 입시에 실패라도 하게 되면,
2학년 때 자퇴하겠다는 너의 주장을 허락하지 않은
엄마, 아빠를 원망이라도 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너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었지.
"은빈아~ 엄마는 은빈이 네가 설사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 해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빛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면 좋겠다."
그때 너는 엄마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했었지.
"엄마~ 저는요, 지금도 제가 한빛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고 좋아요.
우리 선배들이 그랬거든요.
처음에는 몰랐지만 한빛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우리 학교가 진심으로 좋아진다고요.
그런데 저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우리 학교가 더 좋아졌어요.
선생님들도 너무나 존경스럽고요"
"그래? 어째서 너희 학교가 그렇게 좋게 느껴지는데?"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아마 제가 한빛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전혀 알지 못했을 일들을 많이 경험하고 배웠어요.
정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모든 분들이 다 좋은 분들이예요."
그때서야 엄마는 지난 2008년 3월 너의 자퇴소동이 있던 후부터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돌덩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그런 부담감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는 것 같았구나.
항상 엄마, 아빠는 너에게 이야기 했었지?
다른 사람의 잣대로 너의 행복을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정으로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대학교와 그런 과를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남에게 등을 떠밀려 선택한 일보다
네가 진심으로 원해서 선택한 일에서
단 1%라도 더 보람과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딸! 이제 수능이 10일 남았네.
어찌되었건 너의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불안감과 초조함 때문에
남은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지겠지만,
우리 딸이 엄마와 떨어져 3년동안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우리 딸은 충분히 잘 해 내리라 믿어.
그리고 지금보다 저 자신만만해도 괜찮을 것 같애.
어깨 활짝 펴고.
우리 딸 많이 사랑해.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