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베개 엄마 되어

개구장이 울 아들 -2-

은별(한명라) 2001. 5. 29. 10:57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31일날 손님들이 오신다고 청소를 하러 오라는 아들과 같은 반 회장 엄마의 호출전화를 받고
어제 청소 봉사를 하러 갔다.
개구쟁이 아들을 키우다 보니, 가끔씩 몸으로 떼우는 이런 봉사활동에 빠질 수가 없다.*^^*

딸아이는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 모범생(?)과라 이런 사소한 일에 별 신경을 안 써도 되는데,
아들아이는 아무 일 없이 잘 다니다가도
잠시 마음을 놓으면 같은 반 아이의 집에서 전화가 오는지라 항상 불안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울아들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과다-

아들아이의 오른쪽 눈밑에는 길이가 3센치정도, 그 넓이와 깊이도 만만치 않은 흉터가 하나 있다.
하긴 울아들 얼굴엔 그 상처 말고도 크고 작은 흉터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그 많은 흉터가 초등학교 1학년때 한 아이의 손톱에 의해서 생긴 흉터이다.

아들이 1학년 2학기 되던 10월 어느날,
가을비가 부슬 부슬 내리던 그날도 아이들 학교에 보내 놓고,
남편은 회사로 출근하고,
난 집안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FM에서 김기덕의 흘러간 골든 팝인가를 들으며 분위기를 한껏 잡고 있을 때 였다.

집으로 아들아이 담임선생님의 당황해 하는 전화가 왔다.
"승완이 어머님, 저... 승완이가 조금 많이 다쳤는데...지금 학교로 좀 오셨으면 합니다..."
서둘러서 학교로 가는 길이 왜 그리 가슴이 뛰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도착해서 보니 아들아이의 얼굴은 온통 손톱자국으로 얼룩이 져 있었고,
상처에서 흘린 피로 윗옷 또한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상처를 입힌 아이의 손톱을 보았다. 아마 한달동안은 한번도 손톱을 깎지 않은 듯 엄청 손톱이 길었다.
그 아이는 아들의 옆반 아이로, 아들의 교실에 와서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히자 울아들이 그랬단다.
"야! 너 왜 우리반 친구들 괴롭히냐? 빨리 너희 반으로 가라!"
그랬더니 울아들 얼굴에 그렇게 많은 손톱자국을 내 놓았단다.

나보다 앞서 와 있던 상처를 입힌 아이의 엄마.
난 그 엄마를 보자 마자, 내가 상대하기엔 웬지 버거워 보이는 그런 엄마 였다.
저런 모습으로도 아들 담임선생님을 뵈러 올 수 도 있구나 하는...
이제 잠자리에서 일어난 듯한 부시시한 티나터너의 사자머리...
며칠동안 입고 잠을 잤을 듯한 후즐그레한 상하 츄리닝복 차림...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

양쪽 담임선생님 앞에선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듯이 고개를 숙이던 그 엄마는
나중에 함께 성형외과에 가자는 나의 전화에 바쁘다는 이유로 혼자 다녀 오라고 거절을 했다.

크고 작은 많은 손톱자국 중에서 단연히 돋보이는
오른쪽 눈밑의 그 흉터는 도저히 그대로 놔 둘수가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성형외과에 갔다.
아마 3차 수술까지 가야할 것 같다며, 1차 수술비가 70여만원이라고 했다.

상처를 입힌 그 아이 집에 전화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최소한의 도리로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해야 할 것 같아서...
병원에서도 3차 수술비까지 받아내는 사람도 있지만,
1차 수술비라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그 엄마는 자기 나름대로 알아보니까
자기네 형편보다 우리집 사는 형편이 더 낫다고 수술비를 부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 상황에 심한 욕설도 못하고 사람의 도리만 따지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했다.
설마 남편의 전화에도 그 엄마가 그렇게 경우없이 나올까 싶어서...
남편에게는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해 주겠다고 했다는데,
남편은 아마 전화가 오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들이라고...
그냥 우리가 열심히 돈 모아서 수술해 주자고...
물론 수술비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멀쩡한 아이의 얼굴을 그런식으로 상처를 냈다면 나름대로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내게 남편은 벌컥 화를 낸다.
그렇다고 상처가 난 울아들을 앞세우고 가서 "내가 옳다, 네가 옳다"고 큰소리로 싸워야 하겠느냐고...
결국 그 사람들이나 우리나 같은 사람되는거 아니냐고...

결국 2군데의 성형외과를 더 다녀 본 다음에야 남편과 내가 내린 결론은 아이가 좀 더 자란 후에
순전히 우리 부담으로 수술을 해 주기로 했다.
그 엄마에게서는 기대도 안했지만 당연하듯 전화가 오지 않았다.

울아들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어~ 너 얼굴에 흉터가 무슨 흉터니? 너 대단한 개구장이인가 보구나~"그런다.
아들이 3학년에 올라가서도 담임선생님께서도 처음 하신 말씀이 그 말이었다니...

하지만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는 그 아이를 나무라던 의리 때문에 생긴
영광의 그 상처를 나는 무조건 나무랄 수 만은 없다.

어차피 생겨 버린 그 상처가
울아들아이에게 있어서 내면적으로 좀더 성숙할 수 있는 상처가 되었으면...
아무 생각없이 행동에 옮기기전에 그 행동에 대해 책임감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신중함이 되었으면...

가끔씩 손가락으로 그 흉터를 가리고서는
"엄마~ 나 이제 흉터가 없지요?'말하는 울아들.
아마 녀석은 그동안 표현은 안했어도 은근히 그 흉터로 인해서 마음에 고통을 받았나 보다.

하지만 그 상처로 하여금
울아들이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선을 위로만 위로만 향하게 하지 않고,
아래로도 향하게 하여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에게도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심성과 겸손함을 지닐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영광의 상처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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