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베개 엄마 되어

작은 전쟁

은별(한명라) 2001. 6. 11. 11:29

 

 

우리집은 컴퓨터를 거실에 내 놓았습니다.
유난히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집착이 강한 승완이 때문에
아마 아이들 방에 컴퓨터가 있으면 밤잠을 설치면서 까지
게임에 푹 빠질 거라는 생각에서 였죠.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특히 오늘같은 공휴일엔 저는 컴퓨터 옆에도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은빈이와 3학년 승완이가 잠시도 제게 허락을 하지 않으니까요.

오늘 아침은 늦게 일어나려고 작정을 하고 어제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같이 승완이는 텔레비젼과 컴을 켜서는 오락에 빠져 듭니다.
누나인 은빈이도 요즘 한참 그 재미에 빠진 바람의 나라를 하고 싶어 하는데,
승완이가 좀처럼 자리를 양보하질 않습니다.

둘이서 밀고 당기고 하다가 어느정도 합의점을 찾겠지 하는 생각에 애써 무심하려고 했는데,
둘이서 싸우는 태도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치고 받고, 발로 차고 하다가는 은빈이는 자기 방으로 도망가서는 문을 잠구어 버리고,
승완이는 누나의 방문을 발로 차다가는 가끔 엄마가 엉덩이를 때리는 회초리를 가져다가는 방문을 칩니다.

도저히 그냥 두고 봐서는 안될 듯 하여,
승완이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고는 은빈이를 나오라고 했습니다.
화가 날 수록 냉정해 져야 한다는 남편의 말이 떠올라
치솟는 화를 애써 눌러 참으면서
아이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자기의 양쪽 귀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 100번을 큰소리를 내어 세어가면서 하라고요.

처음엔 둘이서 무슨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하듯 헤헤거리며 하더니,
차츰 힘이 드는지 숫자를 세는 목소리도 얼렁뚱땅 해지고,
앉았다 일어나는 자세도 엉거주춤입니다.
100번을 다 채웠는데도 불성실한 태도였다고 다시 10번을 더 하라고 했습니다.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차 합니다.
다음에 또 남매끼리 치고 받고 싸우면 200번씩 하라 할 것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듭니다.

누나에게 한대 더 맞은게 억울하여 기어이 때리려고 씩씩거리던 승완이는
벌을 받는 동안에 그런 기억은 쌍그리 잊은 듯 합니다.
벌과 동시에 컴퓨터도 못하게 하고 그 자리는 제가 차지하여
제게 밀린 숙제로 남아 있던 글을 올립니다.

오늘 여러 독자님 들의 하루는 어떠하셨는지요?

전 조기도 달고,
오전 10시 싸이렌이 울리는 동시에 승완이가 빨리 묵념을 올려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서
안방에서 묵념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투닥투닥 잠시도 쉬지 않고 벌이는 작은 전쟁 때문에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은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그런데요,
낮엔 저렇게 싸우다가도 밤에는 서로 꼭 껴안고 자는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 진다니까요.
꼭 사랑하는 연인처럼 누나의 팔베게를 베고 자는 모습이란...

아무리 각자 자기들 방에서 따로 잠을 자라고 해도
다정한 남매가 되어 꼭 붙어 자는지...
어쩜 자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행복해 보이는지...

지금 두 녀석들 승완이 침대에서 만화책들 뒤적이고들 있습니다.

지금 시간은 밤 9시 30분이구요...

오늘 하루도 뿌듯한 피로를 기분 좋게 느끼시는 좋은 하루였기를 빕니다.
여러 독자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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