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여파가 우리 집에 까지 미쳐 왔다.
남편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어 이리 저리
직장을 알아 보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20대의 새파란 젊은이도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하물며 줄줄이
부양가족이 딸린 30대 중반의 우리 남편을 어느 자선 사업가가 채용을 하겠는가?
남편의 업무 추진 능력이야 의심 할 바
없어서,
어느 일이고 주어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가진 능력의 몇배를 십분 발휘 할 것도 같은데
막연한 바램이고
기대였다.
아직 한창 나이인 젊은 부부가 하는 일 없이 하루종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어서
나라도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하겠다 싶어서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해 본 결과,
아무리 불황이라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는 쉽게 망하지 않는
다는 말을 기억 해 내고는
경험도 없는 장사를,
그것도 "머리에서 발끝까지"라는 구호를 내건 아동용품점을 개업을
했다.
마침 만기가 된 적금도 찾고하여 아파트 상가를 하나 분양을 받아서
사장으로 취임을 했다.
가게는 집에서
어른들의 도보로 하여 40여분 정도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시내버스 노선이 연결되지 않았고,
집과 가게
사이에는 철길과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있어서
아침 9시 30분쯤 출근을 하면 늦은 저녁 10시나 되어 퇴근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제 7살난 개구쟁이 아들아이와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딸아이는 온전히 남편의 보살핌 아래 있어야 했다.
남편은 마침
국가에서 무료로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자동차 정비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없는 오전시간에 수강할 수 있어서
아주 다행이었다.
자격증도 자격증이지만, 그 학원에는 남편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많았고,
60대의 할아버지에서 부터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만이 지닌 여러가지 사연을 들을 수 있고,
또 그들의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남편의 실직에 대한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가게에 나와서 조금은 익숙해진 모습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 중에서 가장 바쁜 시간은 오후 3시에서 오후 7시
사이였는데,
그 이유는 주부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려고 찬거리를 사러 나오는 시간이 그쯤이었다.
오후 3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미키 아동용품점입......."
"올케가?"
손 위 작은 시누이 였다.
"네,
형님"
"니한테 삼촌(내 남편)이 무슨 연락 안 했더나?"
"예,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는데요. 어떤 연락인데요?"
"아니,
아까 조금 전에 삼촌이 우리 집에서 나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전화를 했는데 , 너그 승완이가 자전거에 발목이 끼여
가지고
안 빠진다고 빨리 오라고 안 하더나, 그래서 삼촌이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뛰어 내려가서는 횅 하니 차를 몰고 나갔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혹시 니한테 전화 안 했나 싶어서 전화를 해 본다."
"어디서 우리 승완이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요?"
"뭐, 저기
여중 앞에 있는 놀이터라고 허드라"
여중 앞이라면 우리 어른들 걸음으로도 족히 20여분이 걸리는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
그것도 신호등도 없는 큰 도로를 건너야 하는 곳인데,
어떻게 해서 승완이가 그곳까지 가서 그런 일을 당했단
말인가?
시누이와의 전화를 서둘러 끊고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다급한 전화벨 소리에도 아무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와서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고르거나,
나에게 진열된 옷들을 내려 달라고 하는데 나는 아무런
생각도 정신도 없이
울리지 않는 전화 만을 바라보았다.
5시가 조금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첫번째 전화 벨이 채
멈추기도 전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내다."
남편이었다.
"어디예요? 거기"
"집이야. 니 걱정할 것
같아서 집에 오자 마자 전화 하는데,
승완이 걱정 하나도 안 해도 되니까 마음 푹 놓으라고....."
"승완이도 지금 집에 같이
있어요?"
"응, 근처 병원에도 갔다 왔는데, 괜찮다고 하더라, 이따 데릴러 갈께"
다른 날보다 서둘러 가게 문을 닫고 남편과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었다.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 누나 집에 볼 일이 있어서 가
있었거든,
승완이가 언제 나갔는지 어떤 아저씨 한테서 전화가 온거라,
여중 앞에 있는 놀이턴데, 승완이 발목이 자전거에 끼여
가지고
아무리 해도 안 빠진다고, 아마 119에 신고 해야 할 것 같다고, 빨리 오라고"
"그래서는?"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모르게 달려갔더니,
승완이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가지고 울고 있더라고,
정말로 발목이 자전거 페달 위에 끼여 가지고 안
빠지는데, 애는 울고......
마침 나 한테 전화 해 준 아저씨가 119에 미리 신고를 해서
곧 바로 119차가 3대나 출동을
했는데......
그 사람들도 발목이 안 빠지니까 쇠 절단 하는 기계로 자전거를 다 잘라 냈다.
그리고 승완이를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자고 하는 것을
내가 승완이 보고 한번 걸어 보라고 했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걷더라,
발목만 조금 부은 것 빼고는 괜찮은 것
같아서,
그냥 돌아가시라고, 나중에 경과 봐서 내가 병원에 데리고 가던지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냥 돌아
가던가?"
"응, 집에 오는 길에 동네 병원에 들렀더니, 뼈에랑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
"아휴, 천만 다행이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그 전화해 주신 아저씨는 어떤 분이신데?"
"그 옆에서 중국집 하는 사람인데, 밖에서 애가 우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
보니까
승완이가 오른쪽 발목이 자전거에 끼여 가지고 안 빠지더래.
그래서 물어 보니까 우리집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니까 누나네 전화번호도 알려 주더래"
"정말 고마운 분이네. 그 자전거 주인 한테는 자전거 값 변상해 줬어?"
"아니,
거기에 119차가 3대나 출동을 하니까 사람들이 무슨 아주 큰 사고나 난 줄 알고
얼마나 몰려들었는지....... 그런데 자전거 주인이 안
나타나서 그 전화해 준 아저씨한테
우리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왔다. 혹시 다음에라도 자전거 주인이 나타나면 연락 해
달라고..."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내 참 ....."
"왜?"
"119대원들이랑 사람들이 가고 난 뒤에
승완이가 나한테 가만히 물어 보더라고,
저 텔레비젼에 언제 나오냐고....."
"무슨 텔레비젼?"
"거 있잖아, 긴급출동 119
구조대라고...."
"아~ 사고 나면 119대원들이 와서 구조 해 주고, 그 과정이 텔레비젼에 나오는 거?"
"응"
" 기가
막혀서. 아니 , 그런데 승완이는 뭐하러 거기까지 갔대?"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친구가 거기 사는가 보더라고"
"친구?
누구?"
"김지훈인가 하고, 조소은인가 하고"
순간 이녀석 봐라,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휙하고 스쳤다.
언제인가 이런
대화를 승완이 하고 나눈 적이 있었다.
"승완아! 너 유치원에 좋아하는 여자 친구 있어?"
녀석이 약간 겸연쩍어 하면서
"응"
했다.
"이름이 뭔데?"
"조소은"
"조소은? 예뻐?"
"응"
"엄마 보다 더 예뻐?"
"아니, 엄마가 조금 더
예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마 녀석은 좋아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남자다움의 씩씩한 용기를 보여 주려고 만용을
부리다가
그 지경이 된 모양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승완이는 약간 부은 오른쪽 발에
연고를 바르고 잠이 들어 있었다,
녀석의 이마 위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고는 가만 입술을 이마에 대어 보았다.
따뜻한 체온이
입술에 전해 왔다.
다음 날 아침, 승완이는 어제 운 탓인지 두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승완이를 가슴에 꼬옥 껴 안아
주며 물어 보았다.
"승완아! 발목 아프니?"
"응, 쪼끔만 아파"
"또 길가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보면 올라 탈
거야?"
"아니"
녀석은 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너, 아빠한테 텔레비젼에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다면서?"
"응"
"엄마는 승완이가 발목 다쳐 가지고 119아저씨들 출동하는 것 텔레비젼에 나오며는
부끄러워서 밖에 얼굴
들고 못 다닌다."
"왜요?"
"사람들이 텔레비젼 보고 나서 엄마 보고 승완이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그런 위험한 장난을
해가지고 텔레비젼 까지 나왔냐고 흉본단 말이야.
승완이가 착한 일을 많이 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텔레비젼에 나오면
승완이 엄마는
착하고 훌륭한 아들을 두어서 참 행복하겠다고 부러워 하겠지만,
그런 위험한 일을 하면, 엄마 보고 참 안됐다고, 불쌍하다고
한다,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었다고"
그제서야 승완이는 가만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텔레비젼에서 "긴급 출동 119 구조대"가 방영 될 때마다
나는 승완이의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 녀석도 왠지 무안한 듯 엷은 웃음을 보인다.
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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